자동차 정비공의 또 다른 도전- 야샤 이스마일로프 (2)

야샤 이스마일로프가 자신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러시아에서 온 야샤 이스마일로프 씨는 메스케티 투르크 족이라는 소수민족 출신입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야샤 씨는 1989년에 투르크 족 대학살을 피해 러시아로 갔지만, 러시아 정부의 차별과 탄압을 또 받게 되는데요. 미국 정부가 메스케티 투르크 족을 난민으로 받기 시작한 다음 해인 2005년, 부모 형제와 함께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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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샤 이스마일로프(2)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미국에 왔을 때 언어가 제일 힘들었어요. 영어를 전혀 못 했으니까요.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만 했어요. 물론 지금까지도 영어 공부하고 있죠. 아무튼, 언어가 안되니까 처음엔 영어를 잘 못 해도 할 수 있는 일을 했어요. 처음 제가 가졌던 직업은 페인트공이었어요. 집이나 상업 건물에 페인트칠을 하는 일이었죠. 그러다가 에어컨 그러니까 냉방기 설치 일도 잠시 했고요. 이후 전기공으로도 일했습니다. 러시아에 있을 때 전기 일을 배웠다보니 전기기술자 일이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한 2년 동안 일했죠.”

미국에 왔을 때 야샤 씨는 22살이었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 야샤 씨는 언어의 장벽을 이겨내고 ‘래리의 자동차 정비소’라는 곳을 인수하게 되는데요. 미국에 온 지 단 3년 만이었습니다.

[현장음: 자동차 정비소]

늘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자동차 정비소는 야샤 씨의 가족을 포함해 모두 7명의 직원이 일하는 사업체로 성장했습니다. 한 달에 150대 이상의 차량을 수리한다는데요. 동네에서 못 고치는 차는 다들 야샤 씨의 정비소를 찾을 정도로 지역의 명소가 다 됐습니다.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샬롯츠빌에 왔을 때 옷가지 몇 개랑... 또 뭐가 있었나? 정말 옷 가방밖에 없었네요. 말 그대로 맨몸으로 미국에 온 겁니다.”

하지만 맨손의 청년 야샤 씨에겐 남부럽지 않은 열정이 있었습니다.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미국에 와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3년간 온 가족이 두,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돈을 벌었죠. 제가 가진 전기 기술을 적극 활용하기도 했고요.”

[현장음: 야샤 씨 집]

시끌벅적한 정비소를 떠나 야샤 씨가 향한 곳은 조용하고 깨끗한 주택가. 바로 야샤 씨의 집이 있는 곳입니다. 조용한 저녁 시간, 마당의 나무 탁자에 앉아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미국에 왔을 때 22살이었는데 지금은 어느덧 35살이 됐네요. 이제는 가장이 됐어요. 미국에 온 지 5년 만인 지난 2007년에 아내를 만났죠. 제 아내도 난민이었어요. 저보다 몇 개월 늦게 미국에 오긴 했지만요. 결혼한 후 시민권도 땄고, 지금은 5살 아들과 8살 딸도 있어요. 온 가족이 미국 시민이 된 겁니다.”

사업체를 인수 한 후 이제는 크고 멋진 집까지 사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야샤 씨. 말에서도 행동에서도 여유가 느껴집니다.

자신의 사업체 광고가 붙은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을 주차시킨 야샤 이스마일로프 자택 앞.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현재 미국에서의 삶에 만족합니다. 자녀도 둘이나 있고 애들도 좋은 학교에 다니고 있고요. 이렇게 좋은 집도 샀고요. 사업체도 갖고 있죠.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이렇게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야샤 씨는 미국 생활이 안정을 찾게 되면서 또 다른 도전을 시도했는데요. 사업체를 하나 더 차린 겁니다.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2008년에 자동차 정비소를 차렸고요. 정비소가 아주 잘 돼서 2년 후엔 중고차 매매 사업도 시작했어요. 이 중고차 판매 사업도 요즘 잘 되는데요. 하루에 보통 2~3대는 판매합니다.”

[현장음: 중고차 판매소]

좋은 차를 판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는 손님에게 자동차를 보여주고 자세히 설명하는 야샤 씨. 사업이 이렇게 잘 되는 이유는 자신이 열심히 한 이유도 있지만, 좋은 이웃을 만난 것 역시 자신의 성공에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제가 사는 이곳 버지니아 주 샬롯츠빌은 이제 나의 고향이에요. 다른 도시에 가면 집이 그립듯 어디 가면 샬롯츠빌이 그리워요. 살기도 좋고, 사람들도 정말 친절하거든요. 우리 이웃과 또 지역 사회를 위해 이렇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멀지 않은 버지니아 주 샬롯츠빌은 무려 3천 명 이상의 난민들이 정착해 살고 있는데요. 난민단체인 국제난민협회(IRC)가 난민들의 정착을 돕고 있다고 합니다. 야샤 씨 가족을 샬롯츠빌로 데려다준 국제난민협회의 샬롯츠빌 지역 국장 해리엇 커 씨는 야샤 씨처럼 미국에 정착해 성공을 이루는 난민들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녹취: 해리엇 커] “난민들은 지역에 다양성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혜택을 줍니다. 난민들은 이제 미국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역 사회 경제가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야샤 이스마일로프 씨야말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

야샤 씨는 본인은 성공을 이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요. 아직도 갈 곳을 잃고 헤매는 난민들이라고 했습니다.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전 세계의 난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저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미국에 정착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이뤘으니까요. 앞으로 난민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난민들을 돕고 싶다는 야샤 씨에겐 특별한 꿈이 또 있었습니다.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제 딸이 지금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정말 잘해요. 한 15년쯤 후면 정말 훌륭한 수영 선수가 될 것 같습니다. 저의 첫 번째 꿈은 언젠가 제 딸이 올림픽에 미국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것이고요. 또 다른 소원은 러시아에 있는 우리 친척을 미국에 데리고 오는 거예요. 삼촌이랑 사촌들과 함께 이 아름다운 미국에서 함께 살고 싶습니다.”

[현장음: 야샤 씨 자동차 정비소]

야샤 씨는 미국에서 갖게 된 이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기름 냄새 그득한 자동차 정비소에서 쉼 없이 자신의 꿈을 조립하고 있습니다.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러시아 출신 난민으로 사업가로 성장한 야샤 이스마일로프 씨의 두 번째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지역에서 온 난민의 아메리칸 드림을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