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열번째 이야기. 북한의 벼랑끝 전술로 타결 전망이 불투명했던 승무원 송환 협상이 극적으로 합의된다.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아홉번째 이야기. 미국의 사과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미-북 양국과 벼랑끝 전술을 들이미는 북한의 대응.그리고 막바지를 향해가는 푸에블로호 송환 협상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의 말처럼 북한 측 대표단들은 푸에블로호 석방 협상이 국가 대 국가 간의 협상임을 명확히 하며 회담장에 들어섰습니다.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의 김정우입니다. 미국과 북한이 나포된 푸에블로호를 석방시키기 위해서, 6. 25 전쟁이 끝난 후 처음으로 양자회담을 벌인 1968년 2월 2일, 윌리엄 포터 주한미국 대사는 이 회담이 끝난 후 국무부에 다음과
미국과 소련이 전문과 친서를 주고 받으며 나포된 푸에블로호를 석방시키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1968년 1월 27일, 미국 백악관에 북한으로부터 뜻밖의 전갈이 도착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현 상황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과 사흘 전에 북한이 내 목숨을 노리고, 무장공비를 보내더니, 이젠 미국 군함을 나포해 갔어요. 난, 이런 북한의 행위를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세번째 이야기
푸에블로호가 동해상에서 나포됐다는 소식은 워싱턴 현지 시각으로 1월 23일, 자정 무렵에 전해집니다. 하지만, 당시 푸에블로호가 왜 나포됐는지, 그리고 미군은 끌려가던 푸에블로호를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1968년 1월 23일, 북한 원산항 인근, 동해상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던 미국 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는 북한 어뢰정 네 척과 구축함 두 척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 기획 두번째 시간으로 미국 독립의 역사적 현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필라델피아로 청취자 여러분과 떠나보려고 합니다. 사실 미국 독립 전쟁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이 필라델피아에서 일어났다고 봐도 과장이 아닙니
올해 41살인 사라 김, 한국 이름으론 김정화씨가 이번 달 14일 뉴욕 힐튼호텔에서 아시안여성경제인협회로부터 ‘올해의 우수 여성 기업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상은 ...
이명박 한국 대통령은 25일 북핵문제와 관련,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나오게 되면 북한은 잠재력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한국의 연합뉴스가 보도했습니다.